의혹의 색, Pink & White
전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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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의 사물들은 하나같이 옷을 입고 있다. 그것은 정체불명의 하얀 가루나 핑크색 물감 같은 것을 뒤집어썼다. 셀 수 없이 많은 색 중에 딱 두 가지, 하필이면 흰색과 핑크색이다. 사실 이 두 가지 색깔은 옷을 해 입기엔 좀 부담스럽다. 예로부터 백의 민족이라 하여 흰색과 가까웠던 것이 우리네 조상이라지만 흰 옷은 너무 하얘서 섣불리 다루었다 가는 더럽혀지기 십상이고, 핑크색 옷은 어린 계집아이나 입는 거라는 편견의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다 큰 남자가 핑크색 옷을 입는 것을 본 적이 있던가?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저수지의 개들"에서 Mr. Pink라는 이름을 얻은 스티브 부세미는 암캐 같은 이름이라 싫다며 투덜거린다. "왜 난 핑크야?"

 물론 흰색이나 핑크색을 좋아하는 것이 다분히 개인적인 취향과 선호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취향과 선호가 그저 개인의 성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믿는 것은 조금 순진한 발상이다. 무의식적으로 선택되고 일상 속에 공유되는 많은 것들 이면에는 이미 장기간 광범위하게 진행된 보이지 않는 의도 — 그것은 교육이나 습관, 상식과 편견의 공유를 통해 학습되고 고착되고 되물림된다 — 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흰색과 핑크색으로 된 김희정의 오브제는 불순하다. 첫 눈에는 흰색과 핑크색이 변주되는 색깔의 향연처럼 보이지만 꼼꼼히 뜯어보면 이 사진들이 의도하는 게 순수한 색의 유희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사진 표면에 드러나는 색깔은 본래 있던 색을 뒤덮은 색, 즉 '오염된 색'이고 그 틈에서는 묘한 불협화음이 세어 나온다. 풍경도 아니고 초상도 아닌, 사물에 지나니 않는 오브제가 그냥 그곳에 있을 뿐이지만 살짝살짝 신경을 건드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눈으로 모든 것이 덮여지고 윤곽만 남아있는 겨울 풍경에서 착안했다는 White 시리즈는 핏기가 빠지지 않은 고깃덩어리도, 깨진 계란도, 부드러운 곡선의 복숭아도, 하트 모양의 케이크도 하나같이 하얀 모습으로 뒤바꿔버렸다. 흩뿌려진 것은 백설공주의 눈처럼 하얗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얀 가루다. 새하얀 가루가 뿌려져 본래의 정체를 슬쩍 감춘 그것들은 갇힌 채 침묵한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순결의 대명사라 할 흰색 가루 사이로 힐끗힐끗 오브제가 보이는데 정작 그것은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듯 입을 닫고 있으니 말이다. 마치 고개를 숙이고 다소곳하게 앉아 '조신'의 주술을 외는 여자처럼 오브제는 침묵하고 있다. 하얀 가루는 그 아래에 무엇이 있든 상관하지 않는다. 피처럼 진한 선홍빛의 라즈베리 시럽이 스며 나온다 해도 개의치 않는다. 게다가 누가 알 것인가. 그 하얀 가루가 설탕인지, 소금인지, 아니면 치명적인 독약인지…. 이 이미지들은 더 이상 달콤하지 않다.

 흰색과 붉은색을 합쳐 만든 핑크는 흰색의 농도가 진하면 순하고 연해지지만, 붉은색의 농도가 진해지면 강하고 자극적인 색이 된다. 흰색은 그 자체로 온전하게 절대적인 흰색을 지향하지만 핑크는 중간에서 경계를 타고 움직이기 때문에 쉽게 규정되지 않는다.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러운 연 핑크에서부터 화려하고 정열적인 핫 핑크까지 오르락내리락 한다. 그리고 이러한 다층적인 스펙트럼을 통해 핑크색은 그 얼굴 뒤에 숨어있던 또 하나의 얼굴을 슬며시 드러낸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핑크색 물건들이건만 그것들은 불편하다. 본래의 형태를 잃고 녹아버리거나 점성이 느껴지는 액체의 번들거림이 있고, 움직임이 거의 없는 느린 흐름이 두드러진다. 부활절에 먹는 병아리 모양의 머시멜로와 현실의 감각을 뛰어 넘는 거대한 리본, 녹아 흘러내리고 있는 아이스크림 콘, 혈흔처럼 보이는 자국이 있는 풍선의 표면은 핑크색에 대한 평소의 생각을 보기 좋게 배신한다. 유아적인 취향이나 공주병 증세를 연상시키는 핑크의 강령이 사실은 '귀엽지만 한편으로는 섹시한 여자'였음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작가가 레디메이드 위주로 Pink 시리즈를 구성한 것 역시 여성의 상품화와 획일성을 드러내려는 의도일 것이다. 더 이상 성녀와 악녀라는 봉건적 이분화가 통하지 않는 시대, 세상은 좀 더 교활하고 복잡하고 집요하게 여성의 이미지를 규정짓는다. 단 하나의 이미지로 여성을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암시를 건다. 여성들은 자율적인 결정권을 가지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여성들 스스로 상품화된 여성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을 부인하기 어려운 것도 그런 사실을 반영한다. (1)

 딸이면 분홍색, 아들이면 하늘색이라고 태어남과 동시에 성별에 의해 결정된 색 취향은 스스로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에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었다. 행동, 목소리, 의견, 표정, 복장, 선택한 환경, 취미, 이 모든 것들이 사회적 시선 속에서 규정되고 선택된다. (2) 자기 자신을 주시해야 하고, 언제나 자신의 이미지에 영향을 받았기에 (3) 여성은 항상 보여지는 자로 남았다. 더구나 그 시선이 내면화 되면서 상황은 더 어려워진 셈이다.

 이제 작가는 병정 인형이나 레고 블록(남자 아이들의 장난감에는 핑크색이 없다. 조립용 로봇이나 건물을 쌓는 레고 블록, 한 때 영재 교육용으로 인기를 끌었던 과학상자에서 핑크색을 본 적이 없다)에 핑크색 물감을 칠해버리고, 성모상도 핑크색으로 덧 칠하더니, "그렇게 핑크가 좋으면 얘네들도 칠해버려야 하는 것 아냐?"라며 반문한다. 핑크의 소녀적 취향을 빌려 그 이면에 여성에 대한 사회의 시선, 섹시 신드롬이 자리 잡고 있음을 은유적으로 폭로하더니 아예 그 방식을 통해 항의하는 것이다.

 Pink & White의 오브제들은 그것들이 본래 있던 자리에서 떨어져나와 그 용도와는 무관한 의미를 지니면서 힘을 획득하고, 이어 작가의 의도에 따라 인위적인 변형이 가해진 채 발언권을 얻었다. 그리고 작가는 여성적으로 드러나는 것들 표면에 존재하는 강요된 폭력과 그 이면에 숨겨진 다른 무언가를 은유적으로 폭로하며 이렇게 묻는다. "여성은 어떤 존재이고 나는 여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라고.

(1)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의 토크쇼에서 한국을 '성형공화국'이라고 언급한 바 있고 (시사저널 880호, 2006년 8월 31일자), 통계에 의하면 한국 여성은 화장품 소비량과 인구대비 성형수술 비율 부문에서 세계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브레이크뉴스 2006년 4월 27일자).
(2) 존 버거, 이미지–시각과 미디어, (서울: 동문선, 2000), p.82
(3) Ibid., p.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