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1년, 개살구,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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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개살구, 작업실,”은 2008년 4월부터 2009년 3월까지 쌈지 스페이스의 10기 장기거주 작가로 있던 기간에 작업실, 전시실 등으로 이루어진 쌈지 스페이스의 공간과 이벤트, 작가들의 일상을 기록한 사진과 작가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아티스트 북이다.
 쌈지스페이스는 ㈜쌈지가 1998년 암사동 옛 쌈지사옥을 개조해 실험적인 작가들에게 스튜디오를 제공하는 것으로 출발했다. 설립 이래 10년간 한국 미술계의 탈장르적이고 실험적인 젊은 작가의 산실이었다. 스튜디오 프로그램, 국내작가 해외전시 지원, 국제적인 Emerging 아티스트를 초대, 교류함으로써 국내 작가의 해외진출에도 힘섰다.

 2008년 쌈지 장기 거주 작가로 선정되어 지원은 횡한 작업실의 책상 앞에 앉아 낯설은 작업실의 공간을 바라보며 문득 ‘나는 왜 지금까지 현재를 기록하지 않았지?’, ‘지금이란 순간은 나에게 사진을 찍고 싶을 만큼 의미가 없었던 걸까?’라는 몇가지의 질문을 하게 되었다. 사진을 재현의 매체로 사용하던 나의 관심은 늘 과거와 미래에 집중되어 있었다. 나에게 현재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존재하는 시간이었고, 매번 현재가 되어버린 미래 속에서 또 미래를 위해 살았다. 그러나 나는 다시 다가올 내일보다는 잠시면 지나가버릴 현재를 바라보고 싶어졌다.

 Studio#503의 벽에 걸린 빈 캔버스, Studio#501의 작가에게 빌린 알랭 드 보통의 책  “불안”안에 끼워있는 4개의 네 잎 클로버, 자신도 곧 영국으로 유학을 간다며 갤러리를 지키던 인턴, 네덜란드에서 온 단기 작가를 위한 Good-Bye Party,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던 길 권경환 작가가 들려주던 이야기, “어제 친구들이랑 모여서 술 마시다 나온 얘긴데, 작가들은 잘 돼 봤자, 빛 좋은 개살구라고....... 그래도 다 같은 개살구라면 빛이라도 좋은게 좋은거 아닐까요?.”

 위의 나열된 것은 작가 지원 프로그램인 “쌈지 스페이스”에서의 1년간 작가들의 소소한 일상의 기록에 일부이다. 또한 나의 “현재”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것은 스튜디오 창작 프로그램 안에서의 작가들의 창작에 대한 열정, 성공에 대한 욕망, 성공 지향적 삶의 방식으로 인해 잊혀진 것들과 더불어자본주의와 경쟁 시스템에서 살아가는 작가의 자의식과 불안한 심리를 드러낸다.

 기록하는 과정 중 흥미로웠던 점은 마냥 자유로울 것만 같은 작가의 삶 또한 끊임없이 자신과 남을 비교하고 더 낳은 나를 위해 더 노력해야하는 경쟁의 논리와 사회 구조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더불어 거주 기간 중 갑작스럽게 듣게된 “쌈지 스페이스의 폐간” 소식과 2009년 3월 30일로 이어진 “쌈지의 폐관”의 과정을 지켜 보면서 나는 “비영리 예술 지원 기관의 존속의 어려움”과 같은 미술계의 냉엄한 현실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것으로 인해 현재의 소소한 것들을 바라보고 싶다는 작업 의도와는 다르게 다소 무거운 쌈지 스페이스의 폐관과 용도 변경 그 과정에서 작가로서 느껴졌던 상실감이 책 내용에 포함되어 졌다.